6. 피렌체 #2 - 붉은 유영
2023. 07. 16
호스텔에 상주하는 아기 고양이를 마주하는 것으로 하루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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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전 글에 많이 써놨지만 로마는 날씨가 무척이나 더워서 물이 없으면 좀처럼 돌아다닐 수 없었다.
다만 목이 마를 때마다 물을 사마실 수는 없었던 것이, 물 한병은 보통 1.5유로 정도 했다.
못해도 하루에 네다섯 병은 마신거 같은데 계속 사마시면 하루에 만원 정도를 순전히 물로만.. 지출하는 셈이다.
그래서 보통 길에 많이 보이는 식수대에서 물을 채워서 다녔다.
피렌체도 로마만큼 많진 않았지만 지도에서 찾아보니 식수대가 몇 군데 있길래,
두오모에 가기 전에 산책 겸 수분을 공급하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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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아르노 강에서 한 할아버지가 카누에서 유유자적하게 노를 젓고 있다.
피렌체 사람들은 이런 것이 일상이려나.
조용한 주말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강을 가로지르는 모습..
이런 취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우면서도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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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식수대가 위치한 레푸블리카 광장으로 가는 중.
벽의 마티니 광고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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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이슥한 곳에 있어서 찾는데 조금 애먹은 식수대.
수도꼭지 위에 무슨 빨간 표식이 있어서 봤더니, 피렌체를 다스렸던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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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마시면서 광장을 걷다가 발견한 멧돼지 동상.
코 부분만 하얗게 빛나고 있다. 여타 많은 동상처럼 특정 부위를 만지면 행운이 들어온다는 그런 동상인가보다.
뒤편의 가죽 시장은 아직 한산했지만 이 동상만을 보러 온 사람이 아침치곤 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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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구경은 그만 하고, 한 노점에서 파니니와 퓨즈티 음료수를 사 먹었다.
과일 주스도 팔았는데 종류가 노점치곤 다양했다.
직원분들이 안에서 열심히 과일을 조각내기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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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안의 벤치에 앉아서 아침을 먹는 중, 비둘기들이 귀신같이 몰려들어 허겁지겁 먹고 치웠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비둘기 정말 싫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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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쪽으로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점점 많이 보인다.
모습을 점차 드러낸 두오모 성당.
어제 잠깐 본 풍경도 멋있었지만, 이렇게 멈춰서서 자세히 보니 그 아름다움이 점차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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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은 잠시 뒤로 제쳐두고 일단 티켓을 사러 간다.
티켓 오피스는 대성당 맞은편 건물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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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유로 가격의 Giotto Pass를 구매했는데,
이 티켓으로 쿠폴라 돔을 제외한 대성당 내부, 종탑, 세례당, 박물관을 갈 수 있다.
대성당 내의 돔까지 갈 수 있는 Brunelleschi Pass를 사지 않은 이유는..
두오모에 가는 이유가 외부에서 풍경을 보려고 가는 것이지,
10유로를 더 내고 내부에서 굳이 구경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일본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는
주인공 준세이가 돔 위에 올라가는 명장면이 있지만, 난 준세이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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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오늘은 일요일이라 대성당과 세례당은 들어갈 수 없었고,
종탑 입장까진 시간이 좀 남아 있는 상황.
하는 수 없이 박물관에 갔다가 종탑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모레까지 유효한 입장권이라, 여유롭게 구경하다 박물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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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의 물품보관소에 가방을 맡기고 입장.
원래 두오모에 있던 작품들을 옮겨서 전시해둔 곳이 바로 이 두오모 박물관이란다.
원본 조각상이나 작품의 복제품에는 이런 표시가 있어서 직접 만져볼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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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꼭 봐야한다는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이다. 성경의 구약 내용을 담아 제작한 문이라는데,
바티칸에서도 그랬듯 이런 문 하나하나마저도 세세하게 만드는 섬세함이 참 언제 봐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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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하곤 관련있는 내용은 아닌데,
사진에서 보듯 유럽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첫번째 층을 'Ground Floor'이라 해서 0층으로 부른다.
두번째 층은 그 다음이니 1층.
사소한 점이긴 하지만 처음 유럽에 와보면 조금은 헷갈릴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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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아까 말했던 'Touchable' 표시가 있는 작품들은 만져볼 수가 있다.
중세에 사용된 악보 혹은 가사집 같아 보인다. 본문의 양식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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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화려한 문양과 장식이 수놓여진 수공예품들이 끝도 없이 있다.
지금까지 본 예술품들은 대부분 종교에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이런 물건들은 그런 점보단 오히려 순수하게 화려함만을 추구한 작품 같기도 했다.
그 당시 피렌체 사람들이 예술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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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문의 문양 같은 그림이 걸려 있길래 설명을 보니,
15세기에 존재했던 칼리말라 길드(Calimala Guild)의 문양이라고 한다.
중세 시대 피렌체에서 예술이 부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귀족 가문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도시를 위해 투자한 모직물 길드와도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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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증축 당시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 여러 장 있었다.
이런 그림들을 볼때마다 항상 주위 풍경들은 수백년동안 바뀌어가는 반면
건물들은 지금과 별로 다른점이 없다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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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을 마치고, 늘 그렇듯 0층의 기념품 가게에 입장.
피렌체는 이렇게 지붕들이 모두 붉은색을 띠는 갈색이라는 통일성을 지닌 점이 참 여러가지로 멋있다.
단란한 작은 마을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색깔 때문인지 저녁 무렵과 같은 따뜻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마그네틱 사진을 하나 구입하고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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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수고대하던 돔의 풍경을 보기 위해 입장해서 계단을 오른다.
조토의 종탑에는 총 414개의 계단이 있다는데,
처음부터 쭉 계단만 있는 건 아니고 중간에 쉴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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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면서도 창문으로 두오모와 피렌체의 풍경이 얼핏 보인다.
계단이 좁기 때문에 내려가는 사람이 있으면 서서 잠시 비켜주거나 해야 했다.
다행히 내가 올라간 때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빨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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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다 온거 같은데.. 싶은 시점이 얼마 지나지 않아 꼭대기에 도착했다.
최상층에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확 트인 피렌체 도시의 전경, 그리고 두오모 쿠폴라.
계단을 오르느라 덥고 힘들었지만, 이 풍경을 보자 방금까지의 그런 불편함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특히나 저 멀리 도시를 둘러싼 푸른 산과 극명히 대비되는 붉은 색의 건물들.
마치 건물 양식만으로 피렌체라는 도시만의 특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옥상에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이 붉은 지붕의 도시를 지켜보고 있자니
정말 영화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철창으로 주위가 다 막혀 있어서, 사진을 찍는데 좀 거슬리긴 했다.
그럼에도 언제 다시 이곳에 와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 탓에,
철창 사이사이로 풍경을 감상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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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피렌체의 모습을 넘칠 때까지 담은 뒤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보인 백색의 세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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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건물인진 잘 기억이 안나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계단을 올라가서
계단에 움푹 패인 자국이 있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명확하게 보이진 않지만 여기도 조금 흔적은 보이길래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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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서 짐을 챙기고 걸어가는데, 두 연주자 아저씨들이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인
'The Whole Nine Yards'를 연주하고 있었다. 참 낭만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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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어제 갔던 중앙 시장으로 다시 향했다.
이유는 어제 너무 좋은 느낌을 받기도 했고, 이곳의 곱창버거가 유명하다고 해서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늦은 점심때였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조금 붐볐다.
곱창버거를 파는 가게의 메뉴. 왼편의 Panini는 버거 형식으로 내주고, Piatti는 빵 따로, 곱창은 접시에 담아서 내준다.
내가 시킨 Piatti 형식의 Lampredotto라는 메뉴. 설명엔 맵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렇진 않았고 조금 짜기만 했던 것 같다.
기대했던 맛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은 뒤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출입구 쪽에 시장의 간략한 지도가 붙어져 있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중 본 식수대. 조각들이 뭔가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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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더운 날씨 탓에 저녁때쯤이나 다시 나가려고 했는데,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구글맵에서 한식당을 발견했다.
위치는 호스텔 바로 옆 건물.
한식당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이제야 발견했다는 사실이 뭔가 좀 웃기긴 했다 ㅋㅋ 그 쪽으로 갈 일이 없긴 했지만.
한국 음식이 먹고 싶기도 했고 리뷰 평점도 좋아서 바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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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하니 '한국식당' 이라고 붙여둔 한식당 '궁'이다.
보통 유럽에선 한중일 요리를 다 겸해서 파는 곳이 많이 보였는데 이곳은 정말 순수하게 한국 음식만 파는 듯 했다.
내가 주문한 김치찌개와 수정과. 맛은 정말.. 끓는 김치찌개에 밥 한술을 퍼서 입에 대는 순간 감동이 몰려왔다.
뜻하지도 않게 이런 식사를 하게 될 줄이야. 쉴 새도 없이 정신없이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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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들러 빨랫감을 가지고 근처 세탁소로 갔다.
더운 날씨 탓에 빨래는 쌓여갔지만 호스텔에 세탁실이 없어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세탁이 되는 동안 호스텔에 가있기도 뭐 해서 어제처럼 저녁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어제와 같은 석양은 보이진 않았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운치있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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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물을 가지고 호스텔로 복귀..했는데 일부가 다 마르진 않아서 침대에 온통 세탁물을 걸어둔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