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베를린 #3 - 자물쇠
2023. 07. 27
늘 그렇듯 7시 경에 눈이 떠졌다.
어제 꽤 많은 곳을 갔다 왔기에 오늘은 아침을 먹 호스텔에서 일정을 좀 보다가, 점심때쯤 출발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다. 아침에 씻으려고 보니 자물쇠가 풀려있고 심지어 내 비밀번호가 맞지도 않았다.
다행인건 일단은 짐을 잠궈야 되니, 혼자서 자물쇠 재설정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열린 상태에서 전혀 재설정이 되지 않았다.
분명 자물쇠가 혼자 풀릴 리는 없고.. 끙끙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가장 가까운 건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니..
내가 자물쇠와 싸우는 동안 나갈 준비하고 있던 같은 방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당연히 모두 아는 게 없다고 했고.. 다들 조금 놀라는 눈치인걸 보면 정말로 아닌 거 같았다.
나도 미안해서 연신 의심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줬었다.
어제 정말 좋은 경험들을 해서 오늘이 기다려졌었는데, 원인은 모르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서 너무 속상했다.
결국 아침도 거른 채 11시가 되어서야 밖으로 나섰다.
일단은 자물쇠를 사야 하니 근처의 유로샵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베를린 대성당 앞에서 커리부어스트를 사먹었다.
앉아서 커리부어스트를 먹으며 슈프레 강을 쳐다보고 있자니, 묘하게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아침의 해프닝은 아무 것도 아닌 것 마냥.. 그래, 사실 아무것도 안 없어진게 어디야?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감자튀김을 입에 물었다.
그래도.. 자물쇠는 사야 하기 때문에.. 유로샵으로 향했다.
어차피 오늘 가려 했던 텔레비전 타워 앞이라 일정이 크게 바뀐 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텔레비전 탑에 도착했다. 동독 시절 세워진 송신탑이라는데,
그래서인지 무언가 차갑고 삭막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서울의 남산타워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전망대가 있다곤 했지만 대성당에 갈 예정이라 올라가보진 않았다.
유로샵이 위치한 곳은 건너편 상가였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오밀조밀한 상가 분위기를 좋아해서 온 김에 근처 아웃도어 매장도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이후 유로샵에서 다행히 자물쇠를 구입하고 근처에 있는 대성당으로 향했다.
학생 할인을 받고 7.5유로에 입장.
벽면이 흰 빛깔이라 전체적으로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면 중앙 부분은 대조적으로 화려한 것이 특징.
성당 내부 구경을 마치고 돔 구경을 하기 위해 올라갔다.
267계단을 모두 올라가야 돔에 도착할수가 있단다.. no lift라는 깨알 설명도 포함.
올라가는 건 힘들거나 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가본 다른 곳들처럼 통로가 좁아서 중간중간 멈춰서야 되는 불편함이 있다.
옥상에 올라가서 본 베를린 시내. 날씨가 흐린데다 비까지 내려서 천천히 감상은 못하고, 호다닥 둘러보고 나왔다.
축축해진 상태로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간다. 1층에 기념품 샵이 있길래 비도 오는 겸 우산을 샀다.
아까 대성당 들어가기 전에도 본건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거리에 앉아서 노름?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성당을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 계속 하던걸 보면 꽤 재밌나 보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이곳 근방에선 꽤나 유명한지 사람이 꽤 있었다.
메뉴는 버섯 소스를 곁들인 슈니첼과 사이다? 맥주.
슈니첼은 예전부터 한번쯤 먹어보고 싶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먹어보았던 것인데,
특별할 것은 없고 그냥 얇게 썰어서 튀긴 돈카츠 느낌이었다.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 특히 슈니첼과 버섯 소스와의 조합이 좋았다.
점심을 다 먹은 후, 아까 아침에 있던 일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 호스텔로 돌아가서 짐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새로운 자물쇠도 다시 걸어야 되고..
현금을 얼마나 썼는지 잔돈까지 정확히 세보진 않았었지만, 그래도 현금은 사라진 게 없는 듯 했다.
애초에 누가 바로 옆에서 자물쇠를 풀었으면 소리에 깼을텐데, 그러지도 않았고 말이다.
사건이 일단락되어서 일단 안심하긴 했지만 아까 점심때부터 비가 그치지 않았던 지라 멀리 나가기는 좀 힘들어 보였다.
사실 조금 귀찮았던 것도 있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주변 시내를 산책하다가 돌아왔다.
오늘 일어나자마자 찜찜한 일을 겪어서 시작이 살짝 미묘했지만,
그래도 베를린의 마지막 날인 만큼 나름대로 끝마무리를 잘 했던 것 같다. 도둑맞은 것도 없으니 다행이었다.
내일은 벌써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날이다. 베를린이 너무 좋았어서 아쉬움이 지나가질 않았다.
나중에라도 꼭 다시 와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