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7. 19
9시가 될 때쯤 일어나, 아침은 대충 어제 자판기에서 산 초콜릿으로 때웠다.
내가 스위스에서 머무를 인터라켄(Interaken)까지 가려면
먼저 밀라노 중앙역에서 슈피츠(Spiez)까지 간 후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내가 탈 스피츠행 열차는 3시에 출발 예정이라, 그전까진 시간이 넉넉했지만
딱히 마음이 내키는 곳도 없고, 이탈리아의 무더위를 더이상 경험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체크아웃 전까지 호스텔에서 여유롭게 쉬다가 출발하기로 했다.
체크아웃 30분쯤 전에 가방을 싸고 드디어 길을 나선다.
야외에 있는 플랫폼에 들어가기 전 잠깐 대합실 안에서 땀을 식히고 있는데,
두 경찰관들이 오더니 불시에 신분증 검사를 했다.
나만 그런건 아니고, 안에 있던 사람들도 다 검사한걸 보면 의례적으로 하는 일인것 같다.
유럽은 이렇게 불시에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듯.
이후 플랫폼으로 올라가 기차를 타고 다시 중앙역으로 향했다.
테르미니에서 이용했던 물품보관소 'Kibag'.
짐을 맡길까 고민을 잠시 했지만 또 같은 경험을 하긴 싫어서 포기.
이틀 연속으로 KFC에 왔다. 무슨 세트를 시켰는데 삶은 듯한 옥수수가 나온다. 이게 무슨..
펠트리넬리 서점에서 본 한국 음반들. 우릴봐~ 뉴진스~~
혹시나 해서 비상금 겸 20유로 정도를 환전했는데, 15 스위스프랑을 받았다.
원래 환율이 엇비슷한걸 생각하면 정말 수수료 비율이 높다..
하염없이 기차를 기다리는 중.
저 빼곡한 이탈로와 트레니탈리아의 행렬을 이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아쉽다.
기차가 와서 2등석 칸으로 바삐 걸어가는 중이다. 1등석 칸에 위치한 식당 칸.
안녕.. 이탈리아!
이탈리아 내륙에서는 보지 못했던 큰 호수가 나온다.
전파가 잘 잡히진 않아서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긴 어려웠지만 스위스 접경 지역의 ‘마조레 호’로 보인다.
처음엔 너무 넓어서 바다인가? 싶었는데 호수인 걸 알고 한번 더 놀랐다..
사진만 봐선 여기가 이탈리아인지 태백산맥인지 모르겠다. 하하
도모도솔라를 지나..
차츰 목가적인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다 열차는 Speiz 역에 정차했다. 호수 앞 산기슭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마을들이 보인다.
여기가 드디어 스위스인가.. 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데,
사람들이 서둘러 건너편 플랫폼으로 옮겨타기 시작했다.
그쪽을 보니 사람들이 인터라켄행 열차에 갈아타고 있길래 나도 서둘러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 내부의 모습. 짧은 구간만을 운행해서 그런지 소박한 느낌이다.
아무튼 창밖으로 아까 미처 다 보지 못한 스위스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본격적으로 마치 동화같은 모습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푸르른 하늘, 드넓은 강과 들판. 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스위스식 주택들.
이런 영화같은 곳이 실존하는구나.. 싶어서 끝없이 풀려나오는 풍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윽고 열차는 호숫가에 더 가까워진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호수 바로 옆에서 노니는 조각배들과, 가끔가다 뭍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자니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는 이런 풍경이 너무 낯설면서도 좀처럼 호기심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인터라켄 동역(Interaken Ost) 역에 도착했다.
인터라켄에는 역이 동역, 그리고 서역 총 두개의 역이 있는데,
내가 잡은 호스텔은 어느 역에서 가던간에 시간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풍경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에 동역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동역 바로 앞에 제법 규모가 있는 호스텔이 있어서 그런지 호숫가에 사람들이 꽤나 모여있다.
역 주변을 조금 둘러보다 짐도 무겁고 해서 호스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시내나 숙소는 대부분 서역에 위치해있다 해서 그런지 동역이 크게 볼게 없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건물들로 빽빽했는데, 이곳은 정말 온 주변이 자연으로 뒤덮여져 있다.
집들도 다들 주택뿐이고.. 그냥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자전거를 타는 노부부의 모습. 이 평화로운 모습의 흥취를 한껏 더해준다.
쓰레기통 위에 비치된 반려견용 배변 봉투함. 간단하지만 확실히 거리 미관에 좋을거 같긴 하다.
호스텔로 가는 길에 있는 쿱 마트가 위치해 있었는데, 정말 어디에나 있다..
쿱에서 조금 더 걸어 드디어 도착한 퍼니 팜 백패커즈 호스텔.
간판의 연식이 꽤 되어보이는 캐릭터기 인상적이다..
꽤 낡아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규모가 있는 외관이다.
구글맵 리뷰에서도 본 호스텔에서 키우는 강아지.. 아니 개.
덩치를 보아하니 나랑 싸우면 내가 먼지나게 맞을 것 같다.
주변 풍경이 워낙 평화로워서 그런가? 로비도 널찍하고 직원분들도 친절하게 안내해주어서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내부 복도의 모습. 예전에 리조트로 쓰였다는데 그래서인지 오래됐어도 분위기가 상당히 고급지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다른 투숙객들이 온 모양인지 그런지 만실이다.
아쉽게도 락커가 작은 가방 하나 들어갈 정도로 협소해서 가방을 객실 내부에 이렇게 보관해야 했다.
사실 다른것보다도.. 객실에서 저 구름을 두른 산맥의 모습을 볼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스위스의 풍경에 감탄하며 저녁거리를 사러 쿱으로 향한다.
주위에 가게들이 있긴 했지만 너무 비싸기도 하고 사람들이 붐벼서 쿱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환타가 어째서인지 12프랑 수준으로 엄청나게 비싸다.
늦은 저녁이라 빵은 다 팔린 모양이지만, 그래도 칸만 보면 메뉴가 엄청나게 많다.
냉동 스파게티를 사서 호스텔 야외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곳 호스텔이 마음에 드는 점은 일단 무엇보다 전경이 탁 트여있고 부지가 정말 크다는 것..
식사는 고작 냉동 스파게티였지만 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닥 신경쓰이진 않았다.
저녁을 먹고 호스텔 주변을 조금 산책하다 돌아왔다.
길게 늘어진 산맥을 따라 점차 하늘이 어둑어둑해진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에 있었는데, 이렇게 정반대의 풍경을 마주하다니
정말 유럽 여행을 왔다는 것이 실감나기도 했다.
내일은 오전에 열차를 타고 융프라우에 오를 예정이다.
사실상 스위스 여행의 본 목적인지라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서 밤이 더 늦기 전에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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