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절대 잊을 수 없는 여름방학

saei joo 2023. 11. 26.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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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WDH_nJM3djc

이 노래는 일본 작곡가 Joe Hisashi의 Summer라는 곡이다. 영화와는 별개로 이 노래는 꽤나 어릴 적부터 쌓인 추억이 많은 곡이다.

한번은 아버지가 아침에 잠이 덜 깬, 초등학생의 나를 노트북 앞에 앉혀두고, 이 곡을 틀어 주셨었는데 졸려서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도 마치 여름을 연상시키는 이 곡의 분위기, 멜로디만큼은 좋았던 기억이 있다.

다른 추억은 바로 위에 링크한 유튜브 주소이다. 약 십년 전쯤 올라온, 단촐한 배경 사진에 곡만 나오는 영상이다.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공부하는데 왠지 집중이 되려면 잔잔한 노래를 들어야 할 것 같아 Summer를 검색해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상단보다 조금 아래에 위치한 이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영상 자체는 평범하지만 저 영상의 배경 사진에 내가 끌린 무언가가 있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듯한 화질, 기차 뒤로 보이는 시골의 울창한 산맥, 빨간색 구형 자전거, 그 자전거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여자의 모습.. 이런 것들이 어릴적을 향한 나의 향수와 겹쳐 보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가끔씩 이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여름에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던가 하는 별것 아닌 생각들에 빠질 때가 있다.

<기쿠지로의 여름>은, 이런 여름과 여행이란 두 키워드가 잘 드러나있는 영화이다. 제목부터가 기쿠지로의 ‘여름’이니,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 Ost의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영화는 크거나 거창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앞에서 말한 두 키워드를 그 자체로 돋보이게 해준다.

어릴적 집을 나간 엄마를 찾으려 여름방학의 시작에 무작정 집을 나선 마사오와, 그에 동참하게 된 동네 아저씨. 초반에 마사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양, 경마에나 돈을 쓰던 아저씨는 엄마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하는 마사오의 진심을 깨닫고 이를 이뤄주기 위해 노력한다. 먼 길을 떠나는 목적이었던 엄마와의 재회는 예측 가능한 결과로써 다가오지만, 그 여행의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신 없을 정도로 값진 여름방학을 만들어 주었다. 길을 가며 만난 호텔 직원, 한 커플, 방랑가 아저씨, 폭주족 아저씨들, 그리고 천사의 종. 이 모두가 마사오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순수한 그림일기 형태의 장면들에서 볼수 있듯 그렇다.

영화는 그저 마사오의 여름방학만을 담은 것일까? 아니다. 그해 여름에 값진 여행을 떠난 것은 마사오 홀로가 아니라 ‘기쿠지로’ 아저씨도 함께였으니까. 분명히 처음에는 귀찮아 했을 뿐이지만 점차 자신과 비슷한 마사오의 모습이 눈에 밟히고, 아저씨도 용기를 내어 현재는 요양원에 있는 늙은 어머니를 보러 간다. 그저 먼 발치에서 지켜보았을 뿐이지만 거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고 그 큰 용기는 마사오로부터 얻은 것이리라. 아저씨가 마사오에게 잊지 못할 여름방학의 추억을 만들어 준 것은 단순히 마사오가 안쓰러웠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릴적 모습과 마사오가 겹쳐 보였던 것이 아닐까.

<Summer>는 영화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단순히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는 일관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면에서 Summer의 일부 부분들이 삽입되었는데 노래 하나만으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다. 여기서 이런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에 알맞게 한 곡으로만 표현해낸 능력, 그리고 그것이 나를 포함한 관객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던 것 같아 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조 히사이시에게 새삼 경외심이 들었다.

마사오와 아저씨의 잔잔하지만 시끄러운 그들만의 여정을 보며, 나도 오랜만에 ‘여름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것만 같다. 기쿠지로가 그랬듯, 우리 모두에겐 한 번쯤은 잊지 못할 여름방학을 보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극 초반부에 계속 답답한 표정으로 아래만을 응시하던 마사오가 결말에서 예전과 비슷하지만 좀더, 힘차게 집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 마사오에겐 당초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절대 잊을 수 없는 값진 기억이 남은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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